"진짜, 진짜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 주세요. 이런 매물 쉽게 안 올라온다니까요."
"아니, 이게 생활 기스 수준이라고 퉁칠 수준이냐고요. 물건이 이러면 버려야지, 이런 걸 무슨 양심이 있어서 옥션에 올려요? 우리는 이런 거 취급 안 해요, 나가요."
오늘만 벌써 다섯 번째 축객령이 내려졌다. 나는 준비해 온 자료들은 주섬주섬 챙겨 거래소를 빠져나왔다. 2급 거래소는 거의 다 돌아봤지만, 어디도 지구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다음 거래소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지구는 영락없이 3급 거래소로 내려갈 운명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어찌어찌 지구를 처분한다고 해도 이주할 행성이 막막했다. 1
"어떻게 됐어?"
예람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어두운 얼굴을 보여줬다. 예람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소 있다는 이야기는 했지?"
"대기 농도 5% 이하는 안 된대. 네가 이런 말은 잘하는데, 어떻게 좀 해보지."
"어쩔 수 없잖아. 신체 중 탄소 성분이 25%가 넘어가는 종족이랑은 거래를 안 한다는데."
하긴, 내가 거래소에 들어간 것도 일종의 편법이었다. 내 인공 장기가 인류의 보편적인 특성인 것처럼 속여 어떻게든 거래를 뚫은 것이다. 인간이 잘 알려진 주류 종족이 아니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런 보람도 없이 곧바로 쫓겨났지만.
"너도 장기 바꾸지."
"돌았어? 자연 장기가 얼마나 비싼데."
예람이 질색하며 대답했다. 나는 목소리를 깔았다.
"지구의 운명이 걸려 있잖아."
"지구에 있는 집 팔았어."
나는 못 팔았는데.
사실 지구의 위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기록을 뒤져보면 20세기쯤부터 학자들은 이런 사태를 경고해 왔다는 것 같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당장 문제가 닥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은 외면하고 만다. 생물학적 특성이 그렇다. 인류의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건 얼마 전에 증명되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섹스를 하지 말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옛날에 섹스를 안 하는 종교가 있었던 것 같은데, 뭐라고 부르더라? 붓다이즘?"
"뜬금없이 무슨 개소리야?"
아, 이런. 또 다른 생각으로 빠졌나 보다. 인공 뇌가 보급형이라 그런지, 가끔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막히는 순간, 그것이 입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AS 센터에 문의도 해봤지만, 원래 내 성격이란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애플에서 샀어야 했는데.
"집중 좀 해. 다음이 마지막 2등급 거래소야. 여기서도 안 받겠다고 하면, 3등급 거래소로 내려가야 해. 3등급 거래소는 대기층도 불안정한 왜행성에 물이랑 이끼 조금 뿌려놔도 올려 준다는데 믿어져? 지구를 팔고 그런 행성을 가져갈 수는 없잖아."
나는 갑자기 그 왜행성에 맥도날드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하면 그리 살기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노력하고 있어. 그렇지만 알잖아, 내 뇌가 집중하기 힘든 거. 이래서 뇌만큼은 타협하면 안 된다니까."
"그건 네가 등신이라 그래. 요즘 애플 보급형이 얼마나 좋은데."
"내껀 마소거든...."
작은 소리로 항변해 봤지만, 예람은 듣고 무시하는 건지, 들을 생각이 없는 건지 저 앞으로 앞서 나아가버렸다.
"행성을 등록하러 오셨다고요."
거래소 관리인이 촉수를 깜빡이며 2 말했다. 나와 예람은 입을 열지 않도록 조심하며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빨을 보이는 것이 대부분 종족에게 위협의 의미라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준비해놓은 자료를 관리인에게 건넸다. 관리인은 그것을 촉수로 잡아채더니 그대로 입으로 추정되는 기관으로 넣어 버렸다. 아, 열심히 준비했는데. 실망해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자 예람이 설명을 시작했다.
"표면적 5억 ㎢에, 고체 물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중력도 있고, 대기층이 있지만 빛도 제대로 들어오고요. 어, 적외선이랑, 가시광선, 자외선 중 하나만 볼 수 있으면요."
"어... 말 끊어서 미안한데요, ㎢요?"
"지구 단위예요. 단위에 대해서는 지구가 보증합니다."
"...뭐. 그렇게 기록해두죠. 5억 ㎢... 미안한데, 이거 어떻게 쓰죠?"
"아, 메모해 드릴게요."
한참 설명하던 예람이 메모지에, 연필로 또박또박 ㎢를 정자로 기록했다. 관리인은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물었다.
"혹시 그거 흑연인가요?"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 지구에 많아요! 혹시 드릴까요?"
"아니요. 저는 됐어요. 대신 흑연 알레르기가 있는 종족이 좀 많거든요. 흑연 있음...."
관리인은 촉수를 분주히 움직이며 무언가를 기록했다. 나는 굳이 보지는 않았지만 예람이 나를 뚫어지듯 노려보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 ...살짝 엿봤다. 예상대로였다.
"윤,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뭔데?"
"닥치고 있기."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어렵지 않지. 사실 그게 내 주특기거든."
관리인은 기록을 멈추고 다시 우리를 돌아보며 촉수를 깜빡였다 3.
"지구에 대해 주신 자료는 얼추 보고 있는데요...."
"아, 나는 먹은 줄 알았어요!"
예람이 나를 노려봤다. 닥치기, 닥치기....
"일단, 인간이 지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하죠?"
"저희는 지구에서 진화했어요. 그리고, 200년 전에 정식으로 행성 소유 절차를 밟아서 처리했고요."
관리인은 촉수로 자신의 몸을 감았다. 나는 그게 턱을 쓰다듬는 것 같은 행위라고 확신했다.
"그건 알지만, 유일한 문명 지성체가 아니라면요? 행성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문명이 있으면 거래가 안 돼요. 예를 들어, 여기 적어 놓은 개미라던가...."
"자료에 그런 것까지 적었어?"
"...."
"안 닥쳐도 되니까 말해봐."
"어."
내 취미란 말이야, 개미 키우기. 개미가 얼마나 대단한 문명을 이룩했는지, 하루종일 말할 수 있다. 예람은 한숨을 내쉬었다.
"개미 멸종시키는데 얼마나 걸려?"
"매미의 전례를 봐서는 한 3일 정도? 내가 연락해 놓을게."
"네, 이 문제는 해결됐네요. 다른 문제 있나요?"
"오... 아니요. 됐어요. 이 문제는 넘어갈 테니까 이 이상 다른 생명체를 죽이지 말아줘요...."
관리인이 기겁하며 만류했다. 그러고보니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에 인간이 유독 담담하다는 유튜브 영상을 본 기억이 있었다. 댓글에 그린피스의 전례를 달아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 사람과 토론을 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저기, 우리가 멸종시켰던 동물 중에 그린피스가 보호하던 동물이 있었잖아, 그게 뭐더라? 웨이루라고 불렀던가? 일본어 같은데, 맞나?"
나는 예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 미안, 닥치기. 기억났어. ...그렇지만 네가 방금 안 닥쳐도 된다고 먼저 말했던 거 기억하지?"
"지금 지구를 구매하시면 사은품으로 달도 드립니다. 달은 자연 위성인데, 낙하하거나 궤도 이탈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보면 됩니다. 외우주 파편들이 행성에 떨어지는 걸 막아주고, 조수의 통제도 지원합니다. 무엇보다 역사, 문화적인 가치가 높아요."
나는 예람이 들었는데 무시한 건지, 듣지 못한 건지 궁금했다. 예람의 설명을 듣고 관리인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지구에는 바다가 없지 않나요?"
"어... 그건, 중요한 기능이 아니라서요. 그냥 혹시 바다를 설치하신다면 쓰실 수 있다는 거죠."
교과서에 쓰인 내용을 그대로 말하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예람은 언제나 이런 임기응변이 약했다. 그게 나의 존재 이유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특이하게도 지구에서 올려다보면 달은 언제나 전면만 보이는데요, 아, 특이하다는 건, 인위적으로 조절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적으로 그런 상태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이게 지구의 지표면에서 찍은 사진인데, 보시면 알겠지만 달에 Mcdonald라고 써있죠. 이건 지구의 기업인데요, 전광판으로 설치된 광고라서 전기만 공급해 준다면 24시간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볼 수 있는 거죠."
"아, 흥미롭네요."
예람은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눈짓을 까닥했다. 그녀는 무언가 감사를 표할 때, 늘 이렇게 소극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그런 성격을 알았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더 치고 나갈 때라는 거지.
"훌륭한 점은 달의 둥근 모양이 맥도날드의 버거 모양을 연상시킨다는 겁니다. 다른 광고라면 달의 공전 주기에 따라 모양이 무너질 수도 있지만, 맥도날드의 경우는 한 입 베어 문 것 같은 모양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식욕을 자극하죠. 무엇보다 추천하는 메뉴는 역시 시그니쳐 버거인 빅맥인데, 고대의 사치 식료품인 밀을 99% 재현해낸 빵과, 인공육 패티가 절묘하게 어우러지죠. 베어 물면 촉촉한 육즙이 흘러나와 빵을 촉촉하게 적시는데, 이 맛이 또 절묘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어필이 되었을 거다. 나는 다시 예람을 돌아봤다. 어....
"...빅맥보다는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 버거를 좋아하던가?"
"쉿."
"네."
뭐, 입맛은 여럿 있는 법이니까. 경험상 나는 심기가 불편한 예람에게 말을 거는 게 좋은 생각이 아니란 걸 알았다. 관리인은 자신의 몸을 촉수로 휘감았다.
"좋습니다. 등록할 수 있도록 검토해 보죠."
"정말인가요!"
무심코 목소리를 높여 되물었다.
"그러면 조만간 검사관을 지구로 보낼 테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네? 검사관이요?"
나는 예람을 돌아봤다. 예람도 아는 바가 없는지 고개를 저었다. 큰일이다. 그러면 정말로 모르는 건데.
"일반적인 경우는 아닙니다만, 행성을 등록하기 전에 옥션에서 재량껏 검사관을 파견하기도 합니다. 주로 행성 사기가 의심되거나 하는 경우인데...."
예람이 나를 바라봤다. 같이 준비했으면서 왜 나를 봐. 산소 농도를 올려 잡으라고 한 건 너잖아. ...물론 내가 혼자 수정한 부분이 꽤 있긴 한데.
"어... 그러면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예람이 물었다. 그러자 검사관이 나지막하게 촉수를 깜빡이며 말했다 4.
"아뇨. 별건 아니고. 혹시 그 빅맥이란 거 포장도 되나요?"
"아."
나는 예람을 쳐다봤다.
"내가 조금 실감 나게 설명하긴 했지?"
"넌 병신이야."
"그런가 봐."
검사관의 우주선이 느릿하게 착륙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준비해 놓은 것들을 다시 되새겼다. 정말 중요한 순간이니 실수하면 안 돼.
"기억하고 있지?"
예람이 물었다. 그녀는 나를 지나치게 신뢰하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자신과 같은 시험을 통과한 공무원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시험 기록을 해킹한 것을 내가 발견한 적도 있었다. 그 뒤로 한동안 굉장히 기분이 나빠 보였지만.
"결국 내가 시험 성적이 더 높아서 그랬던 거지?"
"뭔 얘기를 하는 거야?"
또 뇌가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다. 아, 그래, 주의사항이었지.
"하나, 닥치고 있기."
"다음."
"둘, 1.5m 거리를 유지할 것."
"좋아."
"셋, 진짜 존나 진지하게 닥치고 있기."
"잘 기억하고 있네. 그대로만 해줘."
"내 주특기라고 전에 말한 적 있던가?"
예람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에 우주선은 어느덧 착륙해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관리인과 같은 종족으로 보이는 촉수가 달린, 그, 우리 말로 설명하기 조금 난해한 형태의 외계인이 걸어 나왔다.
"거래소 관리인...?"
"종 차별주의자 같은 소리 하지마. 눈 개수가 다르잖아."
내가 말하자 예람이 놀란 듯이 나를 쳐다봤다. 왜? 우리가 어쩌면 종족 중 지구에 처음 방문한지도 모르는 감시관을 맞이하기 위해 다가가려니, 그보다 먼저 감시관을 향해 다가가는 사람이 있었다. 필립이었다.
"지구 방문을 환영합니다!"
필립은 큰 몸을 뒤뚱거리며 달려가더니 두 팔을 벌려 인사를 건넸다. 아, 저러면 안 되는데. 예상대로 감시관이 촉수로 필립을 때렸고, 그는 영문도 모르고 내 쪽으로 도망쳐 왔다.
"이봐, 윤! 이건 무슨 의미지? 혹시 외계의 인사법인가?"
"아니, 감시관께서는 그냥 너를 때리는 거야."
"왜?!"
"그러게 인사할 때 이빨을 보이지 말았어야지."
어리석은 필립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지구 밖이라고는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지구 촌놈이었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명왕성에서 신 나는 휴가를 보내는 동안 지구에 틀어박혀 공부한 보람이 없는 것은 아닌지, 필립은 우리보다 무려 2등급은 높은 공무원이다. 지금도 현장 관리인으로 우리의 상사로 와 있으니까.
"이빨은 왜 보이면 안 되는데?!"
"글쎄, 네 누런 이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
거울을 꺼내 자신의 이빨을 빤히 쳐다보는 필립을 내버려두고 나는 예람과 감시관을 향해 걸어갔다. 감시관은 위협당했다고 믿는지 굉장히 불쾌한 것 같았다.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으니 예람이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저자는 우주의 일반적인 매너를 배우지 못한, 어..."
"애완동물입니다! 잘 가르쳐 놓겠습니다!"
예람이 당황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믿으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는... 애완동물을 방치해서 키우나 보군요. 다음부터는 조심해 주세요."
"그러겠습니다."
나는 정중히 대답했다. 불쌍한 필립. 졸지에 애완동물이 되다니. 나는 연민을 아끼지 않고 필립을 바라봤다. 그런 나를 예람은 어이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지구의 문명 수준을 보고 싶으니 일반적인 거리로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차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시죠."
예람은 미리 준비된 차량으로 먼저 앞서 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돌아보고 감시관을 향해 물었다.
"저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요?"
"네?"
"그, 촉수로 몸 감는 거 있잖아요, 우리 인간 식으로 따지면 턱을 쓰다듬는 거랑 비슷한 거죠? 예를 들어서, 생각할 일이 있거나, 손이 심심할 때 하는 행동인데, 당신의 케이스로 말하면 촉수가 심심하다고 해야 하나..."
"가자, 병신아."
예람이 말했다.
"네... 됐어요, 신경 쓰지 말아요."
나는 결국 호기심을 해소 하지 못하고, 아직도 자신의 이빨에 열중하고 있는 필립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는 곧 자신이 추태를 보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듯이 허겁지겁 예람의 앞으로 뛰어갔다. 맥도날드가 만들어 준 그의 훌륭한 지방이 출렁거렸다.
감시관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지구인의 기준에 맞춰진 차량의 크기에 불만을 표했다. 그런 감시관을 달래기 위해 필립은 옆에서 되는대로 말하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그렇게 유의미해 보이지는 않았다. 예람은 차를 몰고 있었기 때문에[footnote] 예람은 뭐든지 자동 주행을 못 믿었다. 아니, 운전 교습소가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단 말이야? 그건 대체 어떤 동굴에 있지? [/footnote] 그 참상을 보지 못했지만 나는 가는 내내 필립이 만드는 어색한 분위기에 고통받아야 했다. 다행히 우리는 금방 준비된 시내에 도착했다.
"과연, 어느 정도 문명을 갖추고 있긴 하군요."
"예. 저희는 저희가 이룩한 모든 문명을 고스란히 보관해 다음 주인에게 넘길 겁니다.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지성이 있다면 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을 겁니다."
감시관은 예람의 설명을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이 거리를 둘러봤다. 필립은 불안한 한편, 지구가 고작 '어느 정도' 취급받는 것에 불만을 품은 것 같았다. 애완동물 주제에 건방지구나.
"그런데... 이 행성은 분명히 인류에게 적합한 대기를 가진 것이 맞죠?"
"아."
올 것이 왔다. 나와 예람은 재빨리 시선을 교환했다.
"네, 맞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여기서 진화해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을 리가 없었겠죠."
"저희 문명이 본격적으로 화학 연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3~40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거의 새거나 다름없죠."
"그런데, 저 인간들이 호흡기에 차고 다니는 건 뭔가요?"
산소호흡기다.
"악세사리입니다."
"유행하는 패션이죠. 23세기를 강타했다고 할까. 가시는 길에 하나 선물해 드릴까요?"
예상한 질문이었던 만큼 우리는 준비된 대답을 빠르게 말했다. 혹시나 달라고 할 경우를 대비해서, 산소 호흡기 기능을 제외한 동일한 모델을 준비하기도 했다. 예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혹시 커플 세트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나 더 준비해 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미리 시내에서도 호흡할 수 있도록 비싼 산소 캡슐을 입에 물고 있으니 설득력은 있었을 것이다. 감시관은 그럭저럭 납득한 모양이었고 우리는 속으로 안도했다.
"뭐? 아니, 저건..."
필립이 부랴부랴 산소 호흡기를 입에 차며 말했다.
"필립, 너는 윤이랑 다르다고 믿을게. 제발 닥쳐."
예람은 그런 필립의 말을 서둘러 끊었다. 필립은 잠깐 멍하니 서 있더니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때마다 턱살이 흔들렸다.
"아, 아, 아아, 과연, 알았어. 그런 의미구나!"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눈을 찡그렸다. 아마 윙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두 눈을 다 감아버린 것만 빼면 그럴듯한 윙크였다.
"저 애완동물은 왜 저러죠?"
"글쎄요, 눈이 아픈가 봐요."
"당신의 애완동물, 한 번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까 보니 이빨도 너무 누렇더군요."
"압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몰래 발끝을 들어 슬쩍 눌렀다. 잘 가, 지구 최후의 자연 상태 개미야. 눈물이 핑 돌았다.
감시관이 촉수로 몸을 감으며 말했다.
"지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지구가 2등급 행성으로 거래되기 적합한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말이죠?"
"당신들이 준 자료에는 지구에는 생활 기스가 조금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뭐어, 새 물건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잘 보지 않으면 모를 수준이죠."
나는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실 조금 뻔뻔한 면이 있었지만, 중고 거래는 원래 그런 법 아닌가.
"예를 들어, 당신네 행성에는 몇백 년 전까지 바다가 있었던 흔적이 있다고 하는데,"
잘 숨겨놨는데 어떻게 알았지. 예람과 나는 서로 마주 봤다.
"어... 그건 뭐라고 할까, 필요에 의해 공사를 했다고 할까요...."
"어째서요?"
예람의 말에 감시관이 물었다.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 예람은 나를 흘깃거리며 바라봤다. 나는 입을 열었다.
"물을 뺐습니다. 의도적으로요. 간빙기가 끝났거든요."
"네?"
"지구인은 더운 계절에는 본능적으로 바다를 찾아가는 습성이 있습니다만, 빙하기가 시작된 이상 더운 계절이 없으니 별 의미가 없어서 물을 뺐습니다. 원래는 다음 간빙기가 시작되면 다시 채워 놓을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행성을 처분하게 되어서요."
내가 말을 끝내자 예람이 격렬하게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왜? 괜찮은 변명인데.
"아, 그거 말 되네요."
내 예상대로 감시관은 납득한 듯이 촉수를 깜빡이며 말했다. 예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와 감시관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게, 내가 너보다 외계 문화 과목에서 성적이 높았던 걸 기억해야지.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필립이 경악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향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아, 과연.
"저기, 방금, 그건, 지금,"
"알아, 촉수를 깜빡였지."
"어떻게, 아니, 그게 대체, 왜,"
"이해해, 나도 처음 봤을 때 놀랐거든."
나는 필립의 등을 두드려줬다. 필립은 조금 숨을 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건 뭔가요?"
감시관이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필립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떨어트린 비닐봉투를 줍고는 먼지를 툭툭 털었다.
"아니요, 그, 별건 아닌데, 잠깐 점심을 사 와서. 혹시 햄버거도 드십니까?"
"잘했어, 필립!"
나는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 뭐가?"
"그렇게, 우리는 정식으로 또 다른 2등급 행성으로 이주하도록 결정됐습니다! 비록, 정든 옛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괴롭지만, 인류는 언제나 과감한 결정을 통해 진보해 왔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고향이 될 행성에서는 더이상 산소통을 매고 다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바다를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조심하지 않으면 용암에 빠지지만... 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이상적인 환경입니다! 희생 없는 낙원은 없는 법이니까요. 우리 인류를 위한 새로운 유토피아인 것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연합신문에서 오신 기자분이군요. 네, 말씀하시죠."
"그 새로운 행성에 맥도날드 지점은 몇 개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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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재미삼아 썼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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