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단 냄새 나지 않아?"
"응? 그런가?"
여자가 코를 킁킁거렸다.
"꼭 설탕 같아."
심현은 어린 시절에는 최고의 아역 배우였고, 더이상 그렇게 불릴 수 없게 되자 최고의 아이돌이 되었고, 또 그럴 수 없게 되자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이 나라에서는 누구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순회공연을 한 번 돌면 국적을 특정할 수 없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무리 지어 나타나곤 했다. 모두가 그를 사랑했다.
"너무 사랑을 받는 게 문제가 아닌가 싶군요."
의사가 말했다. 심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랑을 받다, 그건 혹시 무슨 의학 용어인가요?"
"아니요, 문자 그대로 Love, 사랑 말입니다."
심현은 의사가 자신과 농담을 하고 싶은 건가, 의심이 싹텄다.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부터 심현을 보고 지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마치 오랜 친구인 것처럼 말을 걸어오는 상황을 그는 왕왕 겪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병원의,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의라도 그럴 수 있는 법 아닌가.
"이봐요, 선생님, 긴장을 풀어주려 하는 건 고맙지만, 저는 정말 심각해요. 이런 병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요. 몸에서 설탕 냄새가 난다니, 저는 유명 인사예요. 그런 상태로 돌아다니면 제 커리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요."
"혹시 사랑의 구성 성분에 대해 아십니까?"
의사는 심현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말해보세요."
"99% 이상이 당분입니다. 옛날부터 모든 언어에서 사랑을 단 것으로 묘사하는 건 그런 이유가 있는 거죠."
"지금 진지한 거 맞죠?"
"저는 환자를 상대로 농담하지 않습니다."
심현은 머리가 어지러워 의자에 등을 기댔다.
"머리가 어지럽나요?"
"네. 안 그러게 생겼나요?"
"당뇨 증상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혈당 수치 검사도 한 번 해봐야겠네요."
말이 막혔다. 심현은 무언가 북받쳐 오르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찬찬히 되물었다.
"이봐요. 이봐요, 선생님. 이제 정말로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줘요."
"보통, 평범한 사람은 평생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아도 문제가 생길 리가 없죠. 사랑이란 건,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작은 것이거든요. 사실 저도 이런 케이스는 학부생 시절에 논문에서 한 번 본 것이 다라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사례는 세상에 단 한 번밖에 없었죠. 혹시 심현씨는 애인이 몇 명이죠?"
"지금 농담해요? 전 기혼자라고요."
"그 사례의 환자는 동시에 50명에서 최대 100명까지 애인을 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혹시 비슷한 사례인가 싶어 여쭸습니다."
"더는 안 되겠군요! 다른 병원으로 가야겠어요!"
심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날, 전국 각지의 30명의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다음 날, 심현은 팔을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설탕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날은 전국 순회공연의 마지막 날이었다. 평소보다 무대는 격렬했고, 수천만, 수억의 사람이 실시간으로 무대를 보고 있었다. 관객석으로부터 환호성이 끊이질 않았고, 관객들이 만들어 내는 빛의 물결은 수평선을 그었다. 심현은 자신이 인생 최고의 순간에 서 있다고 확신했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 순간, 사방에서 파리 떼가 심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무대는 초토화됐으며, 경비들이 무대로 뛰어들어 심현을 무대 뒤로 호송했다. 관객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해프닝에 아연해했다. 악기를 연주하다 어색하게 무대 위에 남은 밴드는 서로 마주 보다가 심현이 서 있던 자리를 보고 의아해했다.
"이거, 누가 꿀 뿌린 거 아니야?"
끈적끈적한 단 액체가 바닥에 흥건히 그어져 있었다. 그날의 사건은 대서특필로 보도되었다.
난폭한 팬 문화! 이제는 설탕물 테러?!
심현은 의사를 어색하게 마주 봤다. 그는 방호복이나 다름없는 꽉 막힌 옷을 입은 채로, 사방을 불안하게 훑어봤다. 조금만 방심하면 개미나 날파리 같은 곤충들이 날아들어 그를 깨물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심현의 질문에 의사는 잠시 뜸을 들였다.
"애인은...."
"전부 정리했어요! 30명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내랑도 이혼할 거고요! 제발 어떻게 된 건지 좀 알려주세요! 애인을 정리하고 한동안 괜찮은 것 같더니 증상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잖아요!"
의사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제가 이전에 말씀드린 사례 있잖습니까? 사실 그 남자는 애인을 전부 정리한 뒤에 완치되었습니다. 아무 부작용도 없이요. 사랑은 설탕이나 사카린 같은 것보다 친절하거든요."
"그러면 제 경우는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것은 그저 제 추측이지만, 심현씨는 가수나 배우로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지 않습니까? 알다시피, 세상에 그만큼 사랑받은 사람은 없어요."
"사랑받는 정도를 줄여야 한다는 말인가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사랑받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왔는데, 이제 그것을 거슬러야 하는 참이었다. 심현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 순간, 입에 무언가 단 것이 흘러 무심코 삼키고 말았다. 침이었다. 그는 미움받기로 결정했다.
그날부터 심현의 기행이 시작됐다. 나체로 조깅을 한다거나, 방송에서 여성이나 인종을 차별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다가오는 팬들은 차가운 태도로 일축했고, 유명인이라는 것을 근거 삼아 소상공인들에게 갑질을 행사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매일매일 심현의 변화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그를 옹호하는 팬들의 설전이 오갔다. 그의 행동에 대한 공방은 일종의 사회 현상이 되었다. 사람이 세 명만 모여도 그들은 심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싸웠다. 방송국에서는 100분짜리 프로그램이 편성해,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심현의 이런 기행에 대해 심층 분석하기도 했다.
이렇게 행동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심현은 이전보다 자신의 몸에서 단 냄새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 과정은 괴로웠지만 어쨌거나 차도가 보이는 이상 그는 그만둘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그와 계약한 기업들에게는 치명적이었고, 오랜 세월 그와 전속 계약해온 모 대기업의 홍보부에서는 루머를 퍼트리기로 결정했다.
심현, 가수의 한계를 뛰어 넘어 행위 예술가로 변하다.
한 관계자의 제보에 따르면 국민가수 심현이 최근 보이는 기행은 사회 문제에 대한 풍자를 담은 행위 예술이라고 한다. 심현은 평소부터 공인으로서 사회 참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심현은 작년에 불우이웃을 위한 재단에 30억을 기부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얼굴만 멋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정말로 멋져..." "최고의 가수인데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 대단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 되지 않는 그의 변화가 단숨에 설득력 있어지는 순간이었다. 심현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정보들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다음 날 아침, 자고 일어난 심현은 침대 위가 계피 가루로 범벅이 된 것을 깨달았다.
"은퇴를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심현은 소리 지르며 일어났다. 흥분한 나머지 입에서 침이 튀어나와 책상에 떨어졌다. 소독약 냄새가 나던 병실 안에 달콤한 꿀 냄새가 감돌았다.
"이런 바보 같은 해프닝으로 무대를 떠나라뇨, 저는 평생을 여기 바쳤어요! 제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란 말입니다!"
"그 전성기가 문제예요. 저는 이 이상 병이 진전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요. 위험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설탕 가루가 몸에서 우수수 쏟아졌다.
"방금 몸에서 설탕이 떨어진 건가요?"
"계피요."
"아."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차분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심현씨는 지금까지 무대에 인생을 바쳐 왔잖아요. 다른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심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았다.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심현은 고개를 푹 숙여 감사를 표하고 자리를 떠났다. 전성기에 이르자 스스로 물러난 가수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가 존경하는 예술가들이란 본래 그 길이 파멸로 예정되어 있더라도 달려가는 자들이었다. 심현은 자신이 그럴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만약 은퇴한다면 은퇴 무대만은 역사에 남을 만큼 화려한 것으로 하고자 마음먹었다.
돌발 은퇴를 선언한 심현이었지만 티켓은 1초도 걸리지 않고 매진되었다. 이는 역사상 가장 빠른 티켓 매진으로 기네스에 올랐다. 고가의 암표가 나돌았고, 가짜 암표를 백만 원에 구매한 사건이 인터넷 뉴스로 올라왔다. 무대 관계자가 표를 빼돌려 차를 마련했다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루머가 나돌았고, 심현의 은퇴에 대한 음모론과 도시 전설이 난무했다. 그렇지만 시간은 결국 흘러,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은퇴 공연 날짜가 다가왔다.
심현이 무대에 오르자 이 세상의 것으로 들리지 않는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팬들은 심현의 숨소리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제 마지막 무대에 와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그가 말하자 사람들은 사방에서 눈물을 터트렸고, 마음이 약한 몇몇은 기어이 쓰러지기에 이르렀다.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호송하려 했지만, 팬들은 어떻게든 앞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구도 비키지 않았다.
그리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가 기대한 것만큼 완벽한 무대였다. 심현은 자신이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났다고 확신했다. 미리 주변 수 킬로미터를 구충 작업 해뒀기 때문에 벌레가 달려드는 일도 없었다. 꿀물 같은 끈적한 땀이 쏟아졌지만, 화려한 조명에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채기도 어려웠다. 그런 조명 속에서도 심현은 빛을 잃지 않았다.
고작 첫 곡이 끝났는데 사람들이 무대 위로 뛰어들었다. 예상된 사태였고, 경비병들이 막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한 명, 두 명, 경비를 제치고 무대 위로 올라오는 팬들이 생겼다. 그렇지만 심현은 피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이렇게 팬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감동이 벅차올라,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껴안아 주리라 마음을 먹고 두 팔을 벌렸다.
팬들이 그의 팔을 물었다. 바삭, 하고 부러졌다. 달콤한 진저브레드 맛이었다. 10분 뒤,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달콤한 냄새가 나는 부스러기만이 남아 있었고, 개미와 파리가 지나간 뒤에는 그마저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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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향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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