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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좀비가 한 명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연재 중단)

신예리 - 동물 시체에서 사는 아이(1)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도 내 의도를 착각하지 않도록 서두에 명시한다. 나, 신예리는 정유진을 싫어한다. 좋아했던 적은 일생 한 번도 없었고, 그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단 한 번도 동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죽은 이상, 얕은 인연마저 끊어졌으니 더이상 관계자로 남고 싶지도 않아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즉, 나는 누구도 이 글을 보고 내게 연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 아이는 그저 불쾌한 안개 같은 것으로 남아 있고, 그 자취가 나를 쫓는 순간, 그것은 그저 망령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거늘, 실체없는 망령 따위에게 사로잡힐 수는 없다.

 

우리 가족이 K시의 빌라에 들어온 것은 내가 5살 무렵이다. 빌라 건물은 30년이나 된 낡은 것이라, 아무리 페인트를 칠하고, 벽지를 새로 발라도 덮을 수 없는 매캐한 냄새가 벽지 너머에서 새어 나왔다. 거대한 동물의 시체 속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건물 외벽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돌출형 베란다는 뼈다귀 같았고, 거기 얹어진 커다란 에어컨 방열기는 여름마다 뜨거운 열을 사방으로 뿌려댔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유행이었는지, 낡은 건물이 많은 K시 곳곳에서 그런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코끼리의 무덤에 대해 떠올렸다. 코끼리들은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무리를 떠나서 대대로 조상이 숨을 거둔 무덤에서 때를 기다린다고 하지 않는가. 만약 아파트가 코끼리의 시체라고 하면 거기에 모여들어 사는 우리는 뭘까? 작은 쥐? 아니, 아마도 개미 같은 것이겠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살던 빌라에는 개미가 많았다.

 

내 신세를 개미에 비유했지만, 사실 개미는 그런 것보다 거주민의 원수 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소동처럼 보였던 개미는 사실은 더 심각한 문제였다. 개미는 집 안의 모든 그늘진 틈새 사이에서 줄지어 기어나왔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약을 치고, 업체를 불러도 잠깐 모습을 감출 뿐, 한, 두 주가 지나면 전혀 다른 곳에서 기어 나오기 일쑤였다. 음식 부스러기라도 흘리는 날에는 개미 덩어리를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욕조에 물을 받자 개미가 둥둥 떠오르기까지 했다. 어렸을 적이라 어려운 이야기는 몰랐지만, 주민 회의 등에서도 진지하게 이 문제를 다뤘다는 것 같았다.

 

어린 나는 아무리 쫓아내도 돌아오는 개미를 보고, 개미가 벽 사이에 산다고 믿었다. 벽지와 벽지 사이, 철과 콘크리트로 이뤄진 그 회색빛 공간을 굴처럼 뚫어 바글대며 행진하는 개미떼를 상상했다. 벽에 귀를 가져대면 사각이며 벽을 갉아 먹는 개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 개미들은 뼈로 된 발톱으로 벽지를 긁으며 올라가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언제나 그 끝에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결국 건물이 거대한 개미 집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이방인은 우리였다. 우리가 그들에게 얹혀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이후, 나는 개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개미들은 벽지 너머에서 작은 구멍을 뚫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은 완전히 감시되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밟아버릴까 싶어, 집 안에서는 언제나 바닥을 보며 걸었다. 가끔 실수를 가장해 바닥에 음식 부스러기 같은 것을 흘려 공물을 바치기도 했다. 대신에 밤에 내 몸을 갉아 먹지 말아 달라고 그들에게 간절히 아양을 떨어댄 것이었다.

 

벽에 귀를 대면 언제라도 개미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긁는 소리, 둔탁한 충격음, 웅성거림, 고함 소리. 마치 성인 남자의 목소리 같았다. 그 끝에는 언제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비슷한 아이의 울음 소리.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유진이 살던 집은 내 방과 벽이 맞닿아 있었고, 내가 개미의 것으로 생각한 그 공포스러운 소리는 모두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유진과 나는 언제나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멀리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었기에 우리가 갈 곳이라곤 집 앞 놀이터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진과 처음 만난 순간, 강렬한 동질감을 느꼈다. 우리에게는 도망자였다. 나는 개미로부터, 유진은 어른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우리 둘의 나이는 같았고, 키도 비슷했지만 그런 것은 사실 관계없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주친 순간, 서로를 사슬로 얽매고 마는 그런 운명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 아이와 친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도 그 사실을 알았다.

 

여느 때처럼, 나와 유진은 놀이터에 나와 있었다.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니지만 거의 항상 같았다. 나는 언제나 감시당하고 있고, 유진의 부모님은 언제나 싸웠으니까. 같은 도피처를 공유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떨어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그네를 타고 있었고, 유진은 시소를 타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정말 멍청한 아이였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불가능한 그런 아이였다. 나는 모른 척하며 혼자 그네를 탔다. 그러다 문득, 다리가 간지럽다고 느껴 고개를 내렸다. 다리 위에는 개미 한 마리가 내 몸을 기어 올라타고 있었다. 나를 거대한 먹이라고 생각한 건지, 나무와 헷갈리기라도 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네에서 떨어졌다.

 

"왜 그래?"

 

유진이 혼자 놀던 시소에서 뛰어내려 내게 달려왔다. 나는 제대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마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유진은 알았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그 큰 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엄지와 검지로 짓이겨 죽였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그로테스크한 환영이 떠올랐다. 늦은 밤이다. 침대 위에서 자고있는 내 몸 위에 검은 줄 몇 개가 그어져 있다. 잘 보니 줄지어 내 몸을 기어 올라온 개미떼였다. 그들은 성인 남자의 고함을 닮은 그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방 안에 그들이 만들어낸 거친 소음이 가득 차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한다. 한 번은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밤에 누가 엎어가도 모를 거라고. 그렇듯이 나는 자면 깨어나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개미들은 턱을 열어 내 피부를 찔러다. 사실 입처럼 보이는 개미의 가위 모양 턱이 먹이를 찢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턱 사이로 무수히 많은 작은 이빨이 들어있는 입이 오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들은 내 살갗을 일제히 파고들고 나는 머지않아 잠옷과 백골만 남기고 사라진다. 내 몸은 개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된다. 빌라 건물처럼 부패한 냄새를 뿜을 것이다.

 

그런데 무신경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순진하게 죄를 저지른 것이다. 유진은 내가 우는 이유도 모르고 있는 멍청이였다. 그 아이는 나를 보며 그 멍청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도 안 봤어."

 

개미의 피와 다리가 붙어 있는 손가락을 옷에 문지르면서. 나는 그 순간, 그 아이와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함께 저지르리란 예감에 사로잡혔다. 유진은 개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타고난 괴물이었다.

 

우리는 죄로 얽힌 관계였다. 죄인이자 영원히 서로 감시해야 하는 간수였다. 어머니가 항상 말하곤 하던 주 예수 그리스도마저 등 돌린 원죄를 타고난 것이다. 부모는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 죄였다. 어떤 자식도 제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부모는 우리의 죄였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알게 된 것이다. 유진은 나 대신 개미를 죽였고, 우리는 서로의 부모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날 그렇게 약속했다. 서로의 부모를 죽이자고.

 

하지만 유진의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주민회의 주최로 끈질길 방역 끝에 빌라에서 개미는 사라졌으며, 유진은 죽었다. 나는 유학을 통해 집에서 떨어져 나왔다. 마침내 저지르지 않은 죄, 실체 없는 망령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