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란
선생님은 예리를 찾아오셨다고 하셨죠? 그 아이는 여기 없어요. 외국으로 나갔거든요. 1년 전에요.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미국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거든요. 미네소타 대학교요. 알아보니까 미국 공대 중에 제일 높다더라고요. 걔는 다행히 제가 아니라 애 아빠를 닮아서 공부를 잘했거든요. 애 아빠는 자길 따라서 한양대에 들어가길 바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으니 유학도 반대를 못 한 거예요. 애가 강해서 내색은 안해도 속으로는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요. 어릴 적부터 친자매처럼 붙어 다니던 아이가 그렇게 끔찍하게 죽었으니까 말 안 해도 알죠. 거기다가 매일 같이 기자들이 들이닥쳐서 공부를 방해하지 않나, 방송국에서는 진을 치고 있지 않나. 마치 우리 애가 잘못한 것처럼 쫓아다니더라니까요. 아, 선생님 얘기는 아니에요. 그냥 그때 그랬다는 거죠.
예리는 옛날부터 공부를 잘했어요. 그러니까 유진이랑도 친하게 지냈죠. 걔도 공부는 썩 잘했거든요. 그렇지만 예리만큼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예리가 걔한테 공부를 가르쳤을 거예요. 걔는 남 가르치는 걸 좋아했거든요. 선생을 하면 딱 좋았을 것 같은데, 성적은 됐는데 걔가 싫어하더라고요. 애는 딱 질색이라면서.
유진이요? 걔도 참 딱하죠. 그렇게 착한 아이가 그런 사고를 당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애 엄마도 야박한 게 어떻게 애가 그 꼴이 났는데 얼굴 한 번 안 비추더라고요. 이혼했으니 이제 남남이라는 거죠. 자기 남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아이한테까지 그래요? 남편은 그래도 자식은 핏줄인데. 우리끼리만 하는 얘긴데, 유진이 아빠도 그래요. 장례식 중에 여자를 불러들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독한 양반이니 유진이 엄마가 도망친 것도 이해가 되죠. 지금은 다른 여자랑 같이 살고 있는데 복도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순 자기 딸뻘이더라고요. 어휴, 징그러워. 꼴에 능력은 좋은가 봐요.
아, 미안해요. 내가 말이 많아서. 사람들이랑 말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별 얘기를 다 하네요. 유진이는 어릴 적부터 알았어요. 옆집에 사는데 마침 우리 예리랑 나이도 같아서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어릴 적에는 친자매처럼 붙어 다녔어요. 우리 집에도 자주 와서 밥 먹기도 했고요. 의젓하고 조용한 애였어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옆집에서 언제나처럼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물건 깨는 소리가 나서 한 명 죽는 것 아닌가 걱정되는 마음에 나가보니까 그 애가 문 앞에 있더라고요. 그 어린 애가 울지도 않고, 그냥 자기 집 문 앞에서 귀를 막고 쭈그려 앉아 있더라니까요. 불러도 대답도 안 하길래 저는 죽은 게 아닌가 싶더라니까요. 다음 날에 마주치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한테 인사하고 학교에 가더라고요. 초등학생인데 말이죠. 그 때만 해도 참 된 아이다 싶었죠.
그런 아이였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 이상한 아이들이랑 어울리는지 집에 밤늦게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쁜 소문도 들리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 아이한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언제 한 번 딱 잘라서 말했죠.
"예리랑 더 어울리지 말아 주렴.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알다시피 이제 수험 기간이잖아? 우리 애한테 괜히 안 좋은 물 들이지 말고."
그러더니 한 번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가더라고요. 대답도 안 하고요. 그때는 뭐 그런 애가 다 있나 싶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야박했나 봐요. 그렇게 불쌍한 애인 줄 알았으면 더 잘해줄 걸 싶어요. 그게 다 자기 잘못이겠어요? 관리도 못하는 부모가 문제지. 하여튼 그 옆집 양반이 문제예요. 문에다 저런 걸 붙여놓고 하여튼 동네 망신은 다 시킨다니까요. 우리 집도 내놨는데 집 보러 왔다가 옆집 문에 저런 게 붙어 있으니까 팔리지도 않죠. 하여튼 민폐예요.
아참, 예리가 기자분들 오시면 이걸 주라고 하더라고요. 자기한테 연락 오지 않게 알고 싶은 내용은 전부 적어놨다고. 그런데 웃기는 게, 그때는 그렇게 극성이던 기자들이 반년이 지나니까 발길이 뚝 끊기더라고요. 덕분에 남에게 보여주는 건 처음이네요. 읽고 돌려주세요. 혹시 다른 분들이 오시면 보여 드려야 하니까요. 저요? 저는 안 읽어봤어요.
정성태
「기자 방문 사절. 방문 시 신고함.」
「사진 절대 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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