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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좀비가 한 명밖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연재 중단)

이영록 -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유충(3)

유진은 앞에서 3번째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 자리를 배정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누구도 그 아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 때문에 멀리서 내려다본 교실은 가운데가 둥글게 도려내어 진 기하학적인 형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1학년 당시에 그 아이가 품고 있던, 옅고 흐릿하던 공허한 공간이 그녀의 마음을 넘어 현실로 흘러나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왜인지 곧바로 난자를 떠올렸습니다. 고립된 것 같은 모습과 달리, 저는 그녀의 주변에 남학생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그녀에게 거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유진과 남학생들 사이에 어떤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쳐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썩 알맞은 연상이었던 셈이죠.

 

미리 말해두지만, 유진에겐 여성적인 매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눈은 컸지만, 얼굴이 길고 입이 작아 오히려 그것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러면 쓸데없이 큰 눈이 부각되어 곤충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신체도 여성이라기보다는 미성숙한 아이의 그것이었습니다. 소녀라고 말하기에는 옷감 너머에는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신비함과 청순함 따위는 전혀 없었습니다. 자각 없는 색기 말이죠. 그러나 유진에게는 그저 예견된 추함이나 궁핍함 따위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집안이 유복한 환경이었던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유진이는 멀리서 버스를 타고 학교를 통학했습니다. 사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여학생다운 액세사리를 차거나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학부모 상담 건으로 학교에 찾아온 유진의 아버지를 만나뵌 적이 한 번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는 쉽게 근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올이 나간 유행 지난 쥐색 양말, 언제 샀는지 가죽 끈이 검붉게 변색한 손목 시계, 늘어난 흔적이 있는 와이셔츠 등이 그랬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녀에게는 남학생들을 끌어들일 요인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겁니다. 더군다나 그녀를 둘러싼 남학생들의 눈에는 그 나이대 소년들이 으레 품고 있는 선망과 동경 같은 순수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더욱 그렇죠. 저는 미궁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까진, 저는 유진이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혼자 있는 것은 1학년 때부터 쭉 있었던 일이고, 제가 신경 쓸 정도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라는 착각을 했던 겁니다. 저는 교단에 올라 학생들을 내려다봤습니다. 제가 들어온 것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교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습니다.

 

"자."

 

낮은 목소리였지만 제 경험상 학생들을 주목시키기에는 충분한 서두였습니다. 그렇지만 교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

 

그 순간, 교실이 더욱 시끄러워 졌습니다. 올라간 제 목소리만큼 소음이 커진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이상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저에게만 속삭임처럼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들으려고 해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잖아!"

 

맨 앞줄에 있는 여학생이 뒤를 돌아보며 크게 말했습니다. 예리라는 이름의 학생이었습니다. 박예리. 그제야 교실은 조용해 졌습니다. 저는 의도치 않게 학생에게 도움을 받은 것에 당황했습니다. 하물며 '범생이'라뇨.

 

학생들의 얼굴이 일제히 저를 향했습니다. 저는 무심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것은 악의였습니다. 학생들이 간직하고 있을 순수함이 완전히 상실된, 성인 남성의 끔찍하고 온전한 악의가 담긴 눈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제 비명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외면하듯 여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여학생들은 갑자기 비명을 지른 저를 의아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인과 아이. 악의와 순수. 이 좁은 교실에는 그 모든 것이 기묘하게 섞여서 막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유진은 그 막의 경계에서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괴물이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 광경에 저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 반에 있는 남학생들은 모두 유진과 잤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심지어 남학생들은 오르가슴에 이르기도 전에 자신들이 그저 먹히고 있을 뿐이란 걸 눈치챘을 겁니다. 마치 곤충의 짝짓기처럼요. 곤충을 닮은 유진의 길고 못 생긴 얼굴도 분명 그 연상에 일조했을 겁니다. 그 결과, 남학생들은 본능을 이기지 못한 대가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그 악의가 상실에서 비롯했음을, 저만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상상을 뛰어넘는 이 상황에 아연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조화 따위는 이미 우스운 것이었죠. 학급은 이미 생태계 같은 귀여운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썩은 내 나는 진창으로 변모해 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중심에서 아귀를 닮은 유진은 유유히 유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사말을 되는대로 내뱉고 급하게 교실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미리 준비한 농담 같은 것을 말할 새도 없었습니다. 제 천직이라 믿어 온 오래된 직업이 주던 소소한 성취감 따위는 이미 흔적도 없었습니다. 이토록 저는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언제나 화나 있었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은 서로 대화하지 않았고, 그들끼리 뭉쳐 속삭이는 것들은 무엇도 제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제가 더 어리석었더라면, 그들의 먹이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저 역시 그 진창의 한가운데 발을 담가 익사할 정도로 교묘하고 치밀한 덫이었습니다. 유진이요? 그 아이는 여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남학생들과 어울렸죠. 우습게도 절제를 모르는 남학생들의 눈에는 성적인 충동 뒤에 가려진 두려움이 서려 있었습니다. 죄를 지은 자만이 가지는 그런 낙인 같은 것이 결코 숨길 수 없는 안구에 새겨진 것입니다.

 

여학생 중에서는 오직 예리만이 유진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네, 아까 말한 그 아이요. 반장을 맡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유진이는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엇을 하건 예리를 통해 한 번씩 거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유진이와 친구였기 때문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의아했습니다. 친구를 가진 아이가, 1학년 때의 정유진 같은 공허한 눈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사건 당일, 저는 밤거리에서 유진이를 봤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른 같은 옷을 입고, 비틀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저는 무심코 유충을 떠올렸습니다. 늙고 살찐 유충. 밤거리의 화려한 불빛에 끌리듯 걸어가는 그 아이를 보며 저는 그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흐릿한 밤거리의 불빛 속을 헤매며 자신을 숭배할 남자를 찾아다니는 것이야말로 음탕하고 탐욕스러운 그 아이의 말로에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경고를 줄 생각으로 등을 향해 몇 차례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유진이는 그런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뒤돌아 보지도 않았고, 저는 저대로 무시 당한 거라 생각해 제 길을 갔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그 시점에 이미 좀비가 되어 있었겠죠. 그날 밤, 자택에서 좀비가 되었다고 하니까요. 돌이켜보면 참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뒤쫓지 않길 잘했죠. 그대로 쫓았더라면 제가 한국 두 번째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아까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면, 혹시 나비가 되지 못한 부전나비 유충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정체를 눈치챈 개미들에게 보복으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만다고 합니다. 저는 그게 유진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유진이가 죽었을 때, 무심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