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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단편

이번 생은 안될지도 몰라

어릴 적의 이야기다. 초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다른 지역의 중학교로 진학한 나는 별로 친구가 많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그룹에는 끼어들 틈이 별로 없었고, 괴롭힘당하는 기간이 길어 음울한 쪽으로 변질된 성격을 받아줄 만한 아이도 없었다. 특별한 괴롭힘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도 없었다. 나 홀로 반에서 떨어져 있는 존재인 것처럼 시간만이 흘렀고, 1학년을 마치며 반에서 진행한 롤링 페이퍼에는 두서없는 웅얼거리면 밖에 없었다.

 

수준이 떨어져서 도저히 못 어울리겠네,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만큼 착한 아이들도 없었지만, 당시의 나만이 그것을 몰랐다. 2학년에 올라가도 딱히 바뀌는 것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반이 바뀌고 한 달이 지날 무렵 특별한 변화가 생겼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서로서로 의식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자주 엮이는 아이가 있었다. 이유는 눈치 없는 내가 봐도 명확했다. 그 아이는 나와 닮아, 마치 세상에서 도려져 있는 듯한 그런 아이였다. 그런 둘이었기 때문에 조를 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자리에서 밀려나고 밀려난 끝에 서로 구석에서 짝을 맺기도 했다. 우리 둘만이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아이만큼은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이상한 아이였다. 항상 무언가를 노트에 휘갈기고 있지만 엿보면 엉성한 각지지 않은 도형 같은 것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고, 혼잣말이 많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아이를 깔봤다. 이러니 친구가 없는 거겠지, 그런 식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이면서도 자신이 그 아이를 동정하고 가르치는 것에 우월감 따위를 느꼈다. 그것은 우정이라 부를 수도 없는 추잡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여전히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한 채, 또 다른 한 해가 지났다. 2학기 말, 겨울쯤에 그 아이가 어느 때나 마찬가지로 중얼거렸다.

 

"역시 이번 생은 글렀나...."

 

그 무렵, 그 아이의 혼잣말에 끼어들어 핀잔주는 것이 습관이 든 나는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바보야, 죽으면 끝이거든. 이번 생밖에 없거든."

 

그렇게 말하자, 그 아이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항상 뜨인 듯, 닫힌 듯했던 작은 눈은 크게 벌어져 한 번도 전부 보인 적 없는 둥근 홍채를 만연히 드러냈다.

 

"아닌데."

 

화내는 듯이, 놀란 듯이, 종잡을 수 없는 듯한 울분이 섞인 어투로 그 아이가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본 적 없는 반응에 속으로 크게 놀랐지만, 그것을 표현하면 지는 것 같다는 아집에 빠져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거든? 영혼 같은 건 없어, 다 뇌가 생각하는 거니까, 살아있는 거야, 바보야."

"아닌데. 나는 처음 아니거든."

 

이상한 말이었다. 우리는 사실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의미 없는 문장을 우악스럽게 교환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나는 그 말만은 사실처럼 여겨졌다. 그 말에는 분명히 강렬한 믿음이 담겨 있었고, 우리의 빛깔 없는 대화에서 유일하게 빛났다.

 

"어? 그러면, 너는 죽었어?"

 

무식한 질문이었다.

 

"응, 몇 번이나, 제법 예전에."

 

그런데 그 아이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였다.

그 아이는 자신의 과거에 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거기에 꽤 심취했던 것같다.

 

그 아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몇 번이나 환생을 거듭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지었던 죄가 원인으로, 무언가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계속해서 환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 몸은 태어나면서 뇌를 다쳐 전생에 대한 기억이 대부분 날아가 버렸고, 그것을 기억해내기 위해 평소에 혼잣말하거나 도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번 생에는 안될 지도 몰라...."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며칠에 걸쳐 장황히 설명하며, 그 아이는 매번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자신이 잊고 있는 사명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라서 어떻게든 기억해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잊고 있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면서 그 아이는 매번 매번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응... 이 뇌로는 안될지도 몰라. 몸을 바꿔야지."

 

그 아이의 이야기에 어느 새 심취한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어떻게든 이야기의 뒷 내용을 듣고 싶어서 부탁했다.

 

"그러면 다시 태어나면 나를 만나러 와줄래? 나는 쭉 여기서 살게."

 

내 부탁에 그 아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선이 썩어 문드러지는 그런 모습으로.

 

나의 부탁이 그 아이에게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학기가 끝나고, 겨울 방학이 끝난 뒤에 그 아이는 자리에 없었다.

 

 

 

그 아이가 죽은 이후로 15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슬퍼하거나 놀라는 주변 사람들이 우습게 여겨졌다. 그 아이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태어나서 나타날 텐데. 언제쯤 성장해서 나를 만나러 와줄까, 한참 먼일인데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점점 성숙해지며 스스로 어떤 짓을 한 것인지 이해하고 말았다. 그 겨울날의 대화들, 허황된 망상과 구조 요청들, 나는 그렇게 그 아이를 놓아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내가 아직도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그 시절이 걸려 있는 중학교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매일 같이 그 길을 지난다. 무언가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어디로도 가지 않은 채 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슬슬 말할 수 있을 나이일 터다, 혼자 돌아다닐 나이일 터다, 올해면 초등학교에 입학했겠거니... 그렇게 살아있지 않은 아이의 유령을 보며 매일 같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이제 안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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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피아 취향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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