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
지독한 열병이었다. 온몸을 관통하는 영감이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켰고, 끓어오른 피가 춤추며 떠올라 붉은 안개구름이 되어, 이윽고 아스팔트 위에 말라붙은 개구리처럼 수분기 하나 없는 시체가 되는 그런 열병이었다. 달빛은 태양만큼 밝았고, 어느 때는 낮인 것 같았고 어느 때는 밤인 것 같았다. 두 눈은 진작에 멀었거늘 파리의 겹눈처럼 열기만을 보고 이해했다. 그것은 영감이었다. 또한 끊임없는 마찰이었다. 파에톤의 태양 마차가 나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비참한 한 마리의 개구리였다.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 얹어진 비극적인 흉물이었다.
그 날도 여름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 온 세상의 수분이 말라붙은 그런 여름날이었다. 눈물샘이 말라붙어 누구 하나 울 수도 없는 그런 뜨거운 날, 차창 너머에 비친 그것은 비극조차 되지 못한 그저 흉물이었다. 개구리였다. 피 한 방울도 가지지 못한 채, 도로 위에 녹아내려 아스팔트와 하나가 된 비극의 덩어리였다. 나의 눈꺼풀이 녹아내려 두 눈이 달라붙은 모습과 꼭 닮았다. 달은 너무나도 뜨거웠고, 필경 태양과 같았다. 개구리였던 비극이 있던 장소에는 붉은 뭉게구름만이 둥둥 떠다녔다. 본디 내 것이었던 그것이었다. 너무 차가운 나머지, 내가 가진 겹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분명히 나의 것이던 그것이었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비가 오지 않았다. 하늘도 우는 법을 잊었고, 나 역시 그러했다. 살얼음이 피어오른 차창 너머로 나는 나의 모습을 본다. 피 한 방울 가지지 못한, 두 눈마저 말라붙은 비참한 모습으로 나는 거기 있다. 그런 꼴로는 개굴개굴 울 법도 한데, 눈물샘마저 말라붙었는지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아, 그 여름은 유독 조용하더랬다.
임종의 순간이 다가온다. 해는 지고, 달만 덩그러니 떠있다. 불빛에 매료된 수천 마리의 초파리들이 저 하늘 높이 올라가 이카로스와 같은 결말을 맞는다. 수천 개의 붉음이 쏟아지는 모습에 매료되어 나 역시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붉음을 가지지 못한 나이기에 그저 검고 흉물스러운 덩어리가 떨어진다. 마른 가죽, 피 한 방울 없는 개구리가 아스팔트에 넓게 퍼진다. 하늘에는 그저 뜨거운 것이 무심히 올라가 있다. 그것이 해인지 달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ㅡ
심애
나는 실패작이다. 눈도 귀도 코도 입도 손가락도 제 위치에 제 개수 붙어있음에도 그렇다. 검은 핏방울이 꿀럭이며 목 위아래를 오간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죽은 피다. 뱉지 않으면 질식해 죽는다. 그것이 나다. 아무리 생각해도 붉은 것이 부족하다.
나는 조용히, 격렬히 호흡한다. 매 숨이 마지막인 것처럼 헐떡거리며 살아있는 것을 버거워한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보여 목을 조르면 그것이 무섭다고 손을 떼어 놓는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로 그 경계선만을 오간다.
생명의 근원은 핏줄 속을 분주히 오가는 타인의 노랫소리다. 그것은 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다가도 곧 질투가 나 허연 가죽을 찢고 핏줄을 끊어 모두 흩트려 놓는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이 검은 피뿐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한다.
밤이 오면 나는 없어진다. 어두워지면 검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나조차 나를 찾을 수 없어진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도 무서워져, 그래서 추하게 운다. 그 흔적을 따라갈 수 있게, 차갑게 바닥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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