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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단편

재작년쯤 썼던 추리소설 도입부

이사악 이고레비치 티냐노프(Исаак Игоревич Тынянов), 아니, 이제는 그저 이사악 티냐노프는 오랫동안 아리아인들과 피를 섞어온 조상들의 노력이 색바랠 정도로 유대인의 전형이였다. 검은 곱슬머리와 어쩐 일인지 5도 정도 기울어져 있지만 여전히 인상적인 크고 긴 코, 주근깨 박힌 얼굴과 말 끝마다 "하지만."을 붙일 것같은 불만스러운 표정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한 인상이 어찌되었건 그와 조금만이라도 함께 한 사람들은 모두 그가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일반적인 유대인'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괴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티냐노프 가(Тынянов 家)의 장남으로 태어난 이사악은 어릴 적부터 랍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심지어 명절에만 간신히 만날 수 있는 몇몇 친척들은 이미 그가 랍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철없는 자식들의 손을 잡아끌며 그에게 찾아오고는 '지혜롭고 어른스러운 이사악'을 조금이라도 본받는게 어떻냐며 일장연설을 늘어놓곤 하였다. 그가 한 것은 사촌들이 양각나팔을 불어보겠노라 떼쓰는동안 가만히 식탁에 앉아 있었던 것이 다였기에 이는 명백히 과한 찬사였다. 이런 취급의 배후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이사악의 손가락이 다 붙어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랍비가 될 것이라 소개했고, 심지어 즐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 때마다 이사악은 "응애"라던가, "으앙"이라는 말로 그것을 소극적으로 정정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아무래도 영 신통찮았는지 6살이 된 해의 로쉬 하샤나*에 처음 만난 고모로부터 들은 첫 인사는 "만나서 반가워요, 꼬마 랍비님."이였다.

(*유대교에서의 신년.)


이사악의 아버지, 이고르 세르게예비치 티냐노프(Игорь Сергеевич Тынянов)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조용히 자는 사람이였다. 어릴 적, 그는 수 차례나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의 가슴팍에 귀를 가져다 대야만 했다. "너희 아버지는 힘든 시절을 견뎌왔단다." 어머니, 안나 티냐노프(Анна Тынянов)는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이렇 듯이 아버지는 금욕적인 사람이였다. 심지어 그는 청교도적인 신념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없이 모욕적일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서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였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몹시 경박한 것이라 여기는 게 분명했다. 자식인 이사악조차도 그의 웃는 얼굴을 떠올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서도 놀랍게도 그는 아버지에게서 그가 랍비 일을 이어줄 것이라는 강렬한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 의지할 수 있는건 유대인 밖에 없다. " 그는 종종 말했다. "뿌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리고는 자신이 유대민족의 정통성을 잇는 마지막 투사인 것처럼 비장한 표정을 보이고는 했다.

그런 아버지와 달리 이사악은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될 수 있는 한, 자신의 선택을 마지막까지 유보하려 하는 그런 사람이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분노한 폭도들이 내던지는 맥주잔에 얻어맞은 후에야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러시아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게으름의 대가로 그가 남들보다 5도 정도 비뚫어진 코를 가지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런 그의 성격을 이해한다면 그가 친인척 한 명 없는 영국으로 망명을 선택한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사실도 아닐 것이다. 그는 왕립주의자도 아니였고, 공산주의자 역시 아니였으며, 시온주의자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는 굳이 분류할 필요가 있다면 자신을 평화주의자로 분류하고자 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가는 ─물론 사교와 거리가 먼 그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샌님'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런 세간의 평가를 정정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요즘같은 시대에 목소리를 내기 위한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고, 그에게는 시대를 풍운할 웅변의 재능보다 한 끼 식사를 식당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 대접받기 위한 달변의 재능이 필요했고 또 어울렸다.

그렇다고 그가 지역 사회에 녹아들려 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사악은 매 주 일요일마다 게마인데에서 랍비 아버지와 어울리는 대신 정교회의 성당에 방문해 미사에 참석했고, 수염을 단정히 면도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바트 미츠바를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이사악이 '응애'와 '으앙' 외에는 자기변호 수단을 갖추기 전인 어린 나이에 이뤄진 할례는 막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과 가문이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이사악의 우둔한 믿음 하에 시행되었으나 그에게 남은 것은 가문으로부터 의절 밖에 없었다. 물론 모두가 이런 처사에 동의한 것은 아니며, 그의 어머니와 동생은 특히나 그의 순수한 의도를 옹호하며 반대했으나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우습게도 그렇게 그가 홀로 10년을 넘게 살면서 삶에 고난이 닥칠 때마다 그는 익명으로 된 돈 봉투를 받을 수 있었고 그것이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사악 티냐노프는 ─더 이상 아버지의 이름을 댈 수가 없는 관계상 그는 자신의 미들 네임을 말하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 살았다. 평생 몸 쓰는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지만 랍비의 아들로서 타나크와 토라를 받아 적으며 살아온 그였기에 그럭저럭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주로 지역 신문에 광고나 칼럼따위를 써주거나 성당의 미사회에서 성경을 필사하거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읽을만한 글을 적어주는 그런 일을 하였다. 큰 성공과는 무관하지만 사소한 보람과 그보다 미비한 보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수수한 그의 삶에 문제가 생긴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후였다. 수많은 러시아 남성들이 착출되어 전쟁터에 내몰리는 와중에도 이사악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 나갔고 그것이 지역 사회에서 그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허나 그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대인인 그가 군대에 입대하면 어떤 차별을 받을 지는 상상만 해도 두려웠고, 또한 그 본인의 본성부터가 군인의 계율과 폭력성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후부터 그에게 주어지던 일들은 거의 다 사라졌고, 곧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은연 중에 주어지는 집안의 지원만이 유일한 밥줄이었고, 이사악은 그 사실을 못 견뎌하면서 일이 없어 넘쳐나는 남는 시간동안 자신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문호로 성공하면 일을 받지 못해도 먹고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적백내전이 시작되면서 그의 소박한 꿈마저 완전히 좌절되고 말았다. 특히나 유대인들에게는 괴로운 겨울이 시작되면서 가문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그는 차별을 피해 러시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떠나기 직전, 그를 유독 귀여워 했던 고모가 찾아와 손에 편지를 쥐어줬다.

"미국으로 가렴. 글을 쓰고 싶다며? 그곳에는 우리 게마인데 출신의 어른 한 분이 출판사를 하고 있단다. 이 편지를 보여주면 일을 맡겨 주실 거야."

늘 이런 식이었다. 이사악은 다른 답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고모가 소개해준 이름도 모를 타인을 믿고 열차에 몸을 실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영국행 배에 탑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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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입문을 위해 두 번째 써본 장편 소설의 도입부.

글 자체는 내 취향이지만, 집필 기술이 부족하여 번역체나, 국내 출판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인 다수 보인다.

 

전작 좀비 소설과 마찬가지로, 웹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내용.

도입부 내용을 응용하여 또 다른 역사 소설을 하나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상업성은 없어 보여서, 부업과 병행하여 연재하지 않을까. 지금은 본업에 집중해야 하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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