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소원이 이뤄지면, 의외로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제 경우엔 유진이가 죽었을 때 그랬어요. 틀림없이 기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내가 죽였나?' 같은 이상한 망상까지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마 평범하게 납득하실 거예요. 제가 그 아이가 죽길 바란 게 그리 이상한 게 아니란 걸요. 우선 그날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유진이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사건 다음 날이었습니다. 새벽 내내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어졌다고 하는데, 부모님은 저녁 뉴스를 보지 않으시고, 저도 뉴스라고는 포털 사이트 메인을 훑는 정도가 다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사건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그만큼 사건은 조용하고 빠르게 마무리됐어요. 같은 반이 아니었다면 끝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를 정도로요. 지금은 수시로 인터넷 뉴스를 확인하는데, 그건 그날 이후로 생긴 버릇이에요. 더 이상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거죠. 일종의 흉터 같은 거라 생각해요. 하여튼, 다음 날도 저는 평범하게 등교했고,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침 조례 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뭔가 달랐어요.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사방에서 속닥거리는 소리만 들렸어요. 다들 죄라도 지은 것처럼 불안해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 시점에 그 아이 책상은 이미 치워졌는데, 저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 거예요. 저는 그냥 그때, 문제집을 풀었을 거예요. 굳이 신경 쓸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거예요.
우리 반의 조례는 다른 반보다 늦게 시작했어요. 담임선생님이 반에 들어오는 걸 굉장히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아침 자습이 끝나고 5분 정도 지나야 시작했고, 그마저도 하지 않아 반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어요. 그렇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어요. 조례 시간까지 앞으로 10분은 남았는데,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은 기분 나쁠 정도로 들떠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힘없는 발걸음 대신에 경쾌한 스탭으로 성큼성큼 교단으로 올라갔어요. 그리고 안 어울릴 정도로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제저녁에, 다들 뉴스는 봤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요. 저는 막 풀리려고 하는 수학 문제와 선생님이 언제나 하는 시답잖은 이야기 사이에서 갈등했습니다. 보통은 전자를 선택하는데, 그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던 학생들이 일제히 정면을 바라봤습니다. 지금까지 반이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런 흐름이었기에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연필을 내려놓고 마지못해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 반에서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했다. 누군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선생님의 시선이 빈 공간으로 향했습니다. 네, 빈 공간이요. 학생들도 따라서 선생님의 시선 끝을 쫓았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비어 있는 곳이 누구의 자리가 있던 곳인지조차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유진의 자리가 있던 곳이었죠.
"우리나라는 좀비 바이러스 안전지대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바이러스란 살아 있는 생물처럼 교묘해서, 조그만 빈틈에도 기민하게 반응해 들어오거든. 저 영국을 봐라, 선진국이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얼마나 사회가 망가졌는지.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나 다름없단 말이야. 그런데 한국은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했잖아. 뭐가 다른가 하면 국민성의 차이 때문이겠지. 영국인들은 어릴 적부터 자기 멋대로 살도록 배운다는데, 부모님도 아이를 그냥 방치하는 거야. 그래서 자립심을 키운다는 거지. 그러니까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퍼지고 사회가 망가지는 거지."
선생님은 충격을 다스릴 시간도 주지 않고 신나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없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면, 역시 조화를 이뤄야 하는 법인데, 이 조화란 게 단순히 조화롭게 살고 그런 얘기가 아니라, 사람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줘야 그제서야 사회가 조화롭게 돌아간다고 하는 거야. 어릴 적에 개미 집을 부숴본 경험은 다들 있지? 그렇지만 나는 안 그랬어. 대신에 그냥 개미가 어떻게 먹이를 나르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바라본 거야. 왜냐? 내가 끼어들면 그 사회의 조화가 깨진다는 걸 알았거든. 정유진이 내 반만큼만 했어도 바이러스에 걸리진 않았을 건데."
마침내 선생님의 입에서 이름이 거론됐지만 누구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모르는 건 저뿐이었던 거죠. 저는 그 이름에 혼자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속에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죽는 방법이 너무 극적이었기 때문일까요? 평범하게 자살이나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저는 기뻐했을지도 몰라도.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라뇨.
아직까진 제가 왜 유진이가 죽길 바랐는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네요. 그걸 설명하려면 조금 더 복잡해지니, 우선 조금 더 옛날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와 유진이 다니던 K 고등학교에 대해 설명하는 게 먼저겠네요. K 고등학교는 30년 이상 된 남자 고등학교였습니다. 남녀 공학으로 바뀐 것은 제가 입학하기 고작 몇 년 전이었고요. 그래서인지 지역 내에서는 남자는 K 고, 여자는 K 여고라는 편견이 만연해 있어서, K 고는 공학 학교임에도 여학생이 매우 적었습니다. 저는 여학생이 적은 만큼 쉽게 뭉칠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반대였습니다. 밉보이면 끝이었습니다.
저는 어른들은 학생이 얼마나 잔인한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상황을 쉽게 낙관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한때 그들도 학생이었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시간이 흐르는 만큼, 기억과 타협하기 때문일까요. 아무튼, 학생들은 빠르게 계급을 나눴어요. 중심은 언제나 K 중학교 출신 여학생들이었어요. 가장 수가 많았고, 대부분 서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아이들은 입학식 날부터 소란스럽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껴안았습니다. 저에겐 그 행동은 정말로 반가워서 그렇다기보다,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처럼 보였어요. 실제로 타 학교 출신들이 안절부절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눈치 빠른 타 학교 출신들은 첫날부터 K 중학교 그룹에 끼기 위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도 계급이 나뉜 거죠. 그 아이들은 잘 어울린 것 같다가도, 모르는 이름이 화제에 떠오를 때마다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그 이야기에 끼지 못하는 한, 영원히 간극은 좁혀지지 않을 거라는 경고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반면, 그런 아이들에 비해 둔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타 학교 출신이면서도 그룹에 끼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첨하지도 않고, 그저 상황을 낙관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아이들은 머지않아 타겟으로 찍히더라고요. 우습게도 괴롭힘을 주도하는 건, 이미 그룹에 들어간 타 학교 출신들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괴롭히면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저는 어느 쪽인가 하면 외래종이었습니다. 타 학교 출신이면서, 눈치가 느리지도 않고, 그렇지만 그룹에 끼기 위해 아첨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우점종에게는 생태계를 망칠 수도 있는 경계 대상처럼 보였겠죠. 우점종이요? 물론 K 중학교 출신 여학생들이죠. 저는 K 고가 순전히 공부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얘기를 듣고 입학했기 때문에 그런 배타적인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저는 자연스럽게 고립됐습니다. 그렇지만 괴롭힘을 당하진 않았어요.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죠.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반에서 가장 잘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제 안에 품은 독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말이죠. 아이들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저에게 가져왔고 저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공식을 풀어줬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저를 건드릴 수 없는 거죠.
몇 주가 지나니 반의 생태계가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그룹에 들어간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 포식자와 피식자. 같은 반에 있더라도 남학생들은 몰라요. 걔네는 때리는 것만이 괴롭힘의 전부라고 믿으니까요. 오로지 저희만 알아볼 수 있는 은밀한 괴롭힘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반에 저 말고 또 다른 외래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으면서 어떤 괴롭힘도 받지 않는 아이. 신예리라는 아이였어요. 저는 그 아이가 어떤 독을 품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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