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구성을 차용한 특이한 시도가 들어간 편.
상징물이 많은 만큼 얘기할 것이 많다.
(때문에 케이시가 나올 때마다 머리가 아파요!)
-한여름 밤의 꿈
익히 알려진 영문학의 시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제목이다.
말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이기도 하며, 희곡 구성이기도 하여 제목을 차용하였다.
제목뿐만 아니라, 필레몬의 대사인 "죽어 간다, 죽는다, 죽었다" 또한,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Now die, die, die, die, die"의 차용이다.
실은 희곡 구성을 사용하려 한 에피소드는 따로 있었다.
그만큼 충동적인 연출이었는데, 실은 두 신적 존재의 대화를 평어체로 구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희곡은 예로부터 온갖 신과 정령이 나와 인간처럼 대화를 나누니,
이야말로 신적 존재간의 대화를 연출하기 딱 좋은 방식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나중에 희곡체 에피소드를 어떤 식으로 전개해야 할지 난처할 따름....
-부활 신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세 번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중 마태복음 9장 24-25절에 이런 문장이 있다.
24 he said, “Go away. The girl is not dead but asleep.” But they laughed at him.
25 After the crowd had been put outside, he went in and took the girl by the hand, and she got up.
차용한 것은 관 안에 든 잠든 시체와, 손을 잡고 일어난다는 부분.
케이시가 행한 기적이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 있음을 암시하는 바이다.
-만 가지, 삼천 가지
만이란 숫자는 영어에서 무한을 의미하기 어렵다.
우선 운율부터 ten thousand니 희곡 구성을 해치게 된다.
영어에서 주로 무한을 상징하는 숫자는 천(1,000)이고, 한자권에서는 만(10,000) 혹은 팔(8).
thousand라고 되어 있는 것을 번역했다면, 기왕이면 만이라고 번역하고 싶다.
다만, 나중에 삼천 가지로 수정하였는데, 이는 삼천이라는 숫자가 올드코트에 중요하기 때문.
깜빡 잊고 만이라 쓰고 말았다가 부랴부랴 수정했다.
-진리를 감각 아래 두지 마라.
실은 케이시가 말하는 이것 역시 중세 기독교 문화적인 사고관이다.
신이 창조한 세계의 절대성이 인간의 상대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하지만, 칸트의 출현 이래 인간의 우주관은 더 상대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현대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소위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이 문장을 통해서 케이시가 구 시대 종교를 대변하는 그릇된 존재임이 분명해진다.
애초에 케이시는 17세기 사람이다. 그가 근대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건 당연할 테지.
-태양
태양은 만물을 비춘다. 이는 케이시가 말하는 지혜, 기독교적 세계관의 복음이다.
과거 교회와 수도원은 인간의 계몽을 맡았던 기관이지 않은가.
허나, 그 밝음은 달과 별을 가린다. 이것이 케이시의 본질이다.
그는 어둠을 가려 인류를 구하는 구원자인 동시에 우주를 바라볼 수 없게 눈을 가리는 방해자이기도 하다.
진실과 진리보다 선한 믿음을 앞세우는 것이다.
그 의도가 악하진 않지만, 인류의 계몽을 위해선 넘어서야 하는 존재임이 필연이다.
-필레몬 허버트
필레몬의 세계관은 자기중심적이다.
나로 완성되는 자아를 가졌고, 어느 원시적인 신앙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무지와 공포로부터 싸울 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주인공의 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