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일기 유서
2021년 3월 20일 - 금각사
rottenlove
2021. 3. 20. 12:34
커다란 금각의 내부에 이토록 똑같은 모양의 작은 금각이 들어 있 는 모습은, 대우주 속에 소우주가 존재하는 듯한 무한한 대응을 연상시켰다. 비로소 나는 상상할 수 있었다. 모형보다도 훨씬 작으면서도 완전한 금각과, 실제의 금각보다도 무한히 커다란, 마치 세계를 감쌀 듯한 금각을.
-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허호 역) 中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최소와 최대가 이어지리라는 문학, 종교적인 상상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존재해 왔다고.
시간 또한 다르지 않다.
지금이 지나면, 언젠가 다음 '지금'이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인간에 내재된 감성이다.
물리의 편린도 알지 못하는 나는 그러지 않음을 안다.
이것이 세계의 본질이며, 그저 그뿐임을.
한없이 거대한 우주 바깥에 존재하는 무존재를 인정하고, 시간의 전후에 있던 무시간無時間을 인정하라.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은 세상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찰나에 불과하다.
실존하는 것은 영원한 허무뿐이다.
그것이 세상의 본질이다.
나는 그 사실을 먼저 깨달은 벌로서, 아무 가치 없는 죽음 저편, 그리고 생 저편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생명을 거슬러 올라가는 건 터무니 없고, 죽은 뒤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테니 지금에라도 해두어야겠지.
그 사실이 슬프다.
한편, 오늘따라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숨도 쉬기가 버겁다. 몸이 아프다.
비가 오는 탓인가?